쑥, 인절미, 그리고 흑임자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할머니의 식탁 위에서 자주 봤을법한 소재들이 MZ세대에게도 큰 인기다. 그래서 할메니얼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일명 '할매입맛' 과 '밀레니얼 세대' 의 합성어로 할매입맛을 가진 젊은 세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식품업계에서 이런 할메니얼을 놓칠리 없다. 빙그레는 2018년 비비빅 더 프라임 인절미에 이어 비비빅 더 프라임 흑임자와 단호박까지 출시하며 '구수한' 맛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스테디셀러 아이스크림임에도 불구하고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변신을 보여준 비비빅은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투썸플레이스는 코리안 레트로 디저트라는 타이틀로 인절미 클라우드 생크림과 흑임자 튀일 생크림을 내놨다. 전통 식재료를 활용한 자극적이지 않은 달콤함과 쫀득한 떡의 식감, 투썸플레이스만의 클래식하고 세련된 룩이 특징이다. 투썸은 이 뿐만이 아니라 쑥, 흑임자 라떼도 선보인 바 있다. 쑥과 흑임자를 이용한 라떼는 투썸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커피 업계에서 시도하고 있을 정도로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다.
두 사례는 매우 대표적인 것에 불과하다. 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신제품들, 그리고 과자나 우유 제품도 할메니얼을 겨냥한 상품을 쏟아내는 중이며 인절미, 양갱, 모나카 같은 간식이 매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은 "옛스러운 정겨운 맛" 이라는 점을 주목해 볼만 하다. 레트로 코드로 대표되는 옛날 간식, 그리고 옛스러운 재료들을 활용한 제품들이니 말이다. 레트로라는 코드는 이제 패션 업계를 넘어 전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순히 과거를 되살리는 범위를 넘어서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변주하는 개념까지 올라왔다. 소비를 이끄는 방향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필자가 과거에도 한번 지적한 적이 있지만, 사람들은 어려움을 느끼면 심리적으로 '레트로토피아' 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가 어렵고 불확실하니, 상대적으로 편한 것으로 기억되는 과거를 미화해 유토피아처럼 여기곤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촉발한 '코로나 블루' 와 불확실성의 시대는 우리에게 살아가고 있는 '현재' 가 꽤 만만치 않은 현실임을 깨닫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트로 코드에 대한 주목은 심리적으로도 더 큰 반향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옛스러운 할매입맛의 코드는 필건강 트렌드와도 어느 정도 접점을 지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우리는 건강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이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각종 "재배기" 가 매출 상승을 기록할 정도니, 사람들이 필건강 트렌드 안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할메니얼로 대표되는 제품들은 기존에 먹던 제품들보다 재료의 특성들 때문에 더 건강한 맛이라는 인식을 주기 쉽다. 물론 대부분이 간식에 해당하는 제품들이라 이 자체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에 접하던 제품들보다는 재료부터 다르다. 조금이라도 건강한 맛을 느끼며 필건강 트렌드의 일부를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취향의 분화도 힘이다. 지금 우리는 각자의 취향과 기호를 추구하는 트렌드를 경험하고 있다. 지배적인 코드, 그리고 지배적인 대세에 모든 소비가 쏠리는 현상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각자 원하는 소비의 방향이 존재한다. 각자의 생각대로 말이다.
그래서 섣부른 예측이 통하지 않는다. 죽 관련 제품들을 출시하며 노년층을 타겟층으로 잡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MZ세대에게 반응이 와서 놀랐다는 업계 관계자의 코멘트를 봤다. 요즘은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각자 취향이 다르고, 그 취향에 따라 소비를 하니 특정 타겟층이 아닌 소비층에서도 반응이 오고 소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취향은 다양하다. 그리고 각자의 소비는 군중심리보다는 스스로의 방향성을 따른다. 그러니 제품들마다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있고, 소통할 기회는 언제든 열려있는 것이다.
할메니얼 트렌드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건 다양한 취향의 분화와 레트로에 대한 관심이다. 취향은 다양해서 저마다의 가능성이 존재하며, 그 가능성을 트렌드에 따라 읽고 소통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레트로 역시 단순히 과거를 되살리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새로운 재해석과 현 소비 패턴에 맞는 발전적인 모습으로 움직여야 소비 심리를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소비 방식으로 만나는 세상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이 다양성을 충족시키고, 진정한 소통을 구현하는 건 바로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이뤄나가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런 방식을 진심으로 지지한다.
사진/빙그레, 투썸플레이스, CJ제일제당
글/노준영, 인싸의 시대, 그들은 무엇에 지갑을 여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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